사랑의 씨튼 수녀회를 창설한 성녀 엘리사벳 씨튼은 1774년 8월 28일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와 성공회 목사의 딸인 어머니 캐더린은 당시 상류층을 이루던 성공회 신자였다. 열정적이고 쾌활하며 사랑스러운 여성으로 성장한 엘리사벳은 1794년 부유한 상인의 아들 윌리엄 씨튼과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인간적 행복이 충만했던 엘리사벳의 가정은, 갑작스러운 경제적 파산과 윌리엄의 폐결핵 발병에서 오는 갖가지 시련을 겪었고 이를 꿋꿋이 이겨나갔다. 남편의 요양을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으나 1803년 윌리엄이 죽음을 맞는다. 거기에서 엘리사벳은 남편의 친구 필리치 가문의 필립보와 안토니오 형제의 진심어린 환대와 우정으로 가톨릭을 접한다.
미국으로 돌아와 가톨릭으로 개종한 엘리사벳은 친척과 친구들의 공격과 배척을 받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든 상황 안에서 선을 찾으며 하느님 말씀에 희망을 품고, 1805년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첫영성체를 하였다. 그리고 1808년, 볼티모어에서 종교차별과 빈곤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아이들을 위해 미국 최초로 가톨릭 교구학교를 시작했다. 1809년 3월 25일에는 정결·청빈·순명을 일 년간 서원하면서, 미국 최초의 방인 수도회 ‘사랑의 수녀회’가 탄생했다. 같은 해 5월 에미츠버그에 수녀원과 학교를 신축, 이전하여 사도적 활동수도회로서의 기초를 세웠다.
수도회를 처음 시작하면서 성 빈첸시오의 정신을 온전히 받아들인 엘리사벳은 빈첸시오와 함께 사랑의 딸회를 창설한 루이즈 드 마리약을 수녀들의 모범으로 삼았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뜻을 찾고 스스로 교회의 딸로 온 생애를 봉헌한 성녀 엘리사벳 씨튼은 1821년 1월 4일, 47세를 일기로 “교회의 자녀가 되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토록 갈망하던 하느님 나라의 영원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