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4일 주님 부활 대축일 - 이영수 세례자 요한 신부님

홈지기2021.04.06 12:39조회 수 1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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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 낮 미사 강론 (2021. 4. 4)

 

 

여기 계셔야 할 분이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여인이, 그저 그 시선에 바를 향료를 들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굴려 내 줄 사람이 있을까... 그것만을 걱정하며 당도한 무덤 앞에서 그녀가 본 것은 예수의 부활도 아니었고, 시체의 소생도 아니었으며, 단지 있어야 할 그가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빈 무덤 사건, 이것이 우리가 기념하는 예수 부활의 유일한 증거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예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 일입니다. 부활신앙은 한 마디로 빛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빛입니다.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목숨의 끝이 절망이나 실패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는 히, 긍정할 수 있는 생명력에 관하여 오늘 부활은 선포합니다. 기쁘게 살아가십시다.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나를 휘몰아치더라도 우리 모두는 빈 무덤 앞에서 다시 힘을 내고 다시 정신을 차립니다.

 

저는 금년 사순시기 동안 귀한 책 한 권 장 바니에의 시보다 아름다운 예수 전을 읽는 행운을 맛보았습니다. 그분은 예수의 부활 사건을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일요일 아침 먼동이 트기 직전, 막달라 마리아가 사랑하는 이의 싸늘한 시신이 묻혀있는 무덤으로 달려갈 준비를 서두른다. 예수와 그분의 아픔보다 자신들과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꿈이 좌절한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 그 겁쟁이 남자들에게 화가 났다. 마리아는 혼자 아프게 가슴을 앓았다. 용감하고 아름다운 마리아가 사랑하는 이의 몸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생각에 기운이 났다. 그런데 무덤이 텅 비어있는 것이다.

내 주님은 어디 계시는가? 누가 그분을 모셔갔는가? 어디에 그분이 계신가? 그녀는 울며 몸부림친다. 울면서 이리저리 미친 듯 돌아다닌다. 갑자기 무덤 가까운 곳에서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고, 그가 동산을 지키는 사람인 줄 안다. 그런데 그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마리아!” 그러면서 전에 자기를 바라보던 그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 예수님이다. 살아계신다. “라뽀니! 오 내 사랑. 당신이군요!”

그녀의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그분이 말씀하신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느님이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

 

안된다. 그녀는 그분을 만지거나 붙잡아서는 안 된다. 맞다. 그분은 틀림없는 예수시다.

그러나 다른 분이시다. 부활하신 예수는 더 이상 전처럼 그녀를 육신으로 그녀 바깥에서 만나지 않고 그녀 안에서 만나실 것이다. 이제 그녀는 자기 몸 중심에 숨어 계시는 새로운 모습의 주님을 찾아야 한다. 예수는 다시 일어나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살고자 격렬한 죽음의 고통으로 캄캄한 어둠의 무덤으로 내려가셨다. 그리스도교의 찬송가 게노시스가 자기 비움이, 겸허한 승리의 노래로 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필리피 2,9~11)

 

 

예수의 부활은 우주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놀라운 현실이며 동시에 더없이 겸허한 사건이다. 그분은 예루살렘 성 위로 위엄 찬 모습을 나타내시어 당신을 모욕한 자들을 모욕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당신이 뽑으신 동료들에게 은밀히 나타나신다. 그런데 그들은 그분을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한다.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의심을 품느냐? 자 만져 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시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느냐?

 

온유하신 예수는 그들이 비겁을 마무라지 않으신다. 당신을 버린 그들을 원망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마리아가 당신이 살아나신 소식을 전했을 때 여인의 말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그들의 불신을 꾸짖으신다. (마르코 16)

 

아무튼 진실이다. 예수는 살아 계신다. 예수님의 손발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면서 토마는 희망과 기쁨에 넘쳐 부르짖는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 20, 28)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나타나시어 좌절한 다들에게 용기와 새 희망을 안겨주시고 생명을 불러일으키시고 힘을 주신다.

 

베드로는 실패와 불명예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상처 입은 가슴을 안고 도망쳤다. 어떻게 실패가 성공을 준비한다 말인가? 죽음이 생명을 가져온다고 하지만 자연애서는 떨어져 썩는 낙엽,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 거절당하고 소멸되어가는 것들이 땅을 기름지게 하고 생명을 살린다. 으깨어진 포도가 술로 바뀐다. 예수도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

 

단순하면서 간절하게 예수의 부활의 순간들을 장 바니에는 전해줍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를 장 바니에의 시보다 아름다운 예수전에서는 여러 번 곳곳에서 들려주십니다.

예수는 모두를 감추어진 사랑의 나라로 데려가기조차 하신다. 그 나라는 바로 지금 여기., 가난하고 비전한 사람들 가슴에, 우리 모두 안에서 떨고 있는 외로운 아이의 가슴에,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안에 있다. 고통과 외로움이 있는 곳, 감옥 빈민굴, 병원, 이 시대의 천민들, 매맞고 내쫒긴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벌거벗겨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안에 그 나라가 있다. 예수는 당신이 가난한 사람, 다리 저는 사람, 눈먼 사람, 거절당하여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들 속에 숨어 있다고 일러주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고 속삭이십니다. (마태 25,40)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부활 대축일을 맞아 도무지 빛이 비치지 않을 것만 같은 코로나 19의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우리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깨닫는 성찰의 시간과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 은총의 시간임을 보게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빛이 온 누리의 모든 이들과 우리 겨레에게 특별히 희망을 잃고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에게 고루 비치기를 거듭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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