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활 대축일 성야 미사 - 김영수 스테파노 신부님

홈지기2021.04.06 12:30조회 수 13댓글 0

  • 1
    • 글자 크기

주님 부활 성야 미사 강론 (2021. 4. 3)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느 경우에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을 무시해야 또는 눈에 보이는 실재와는 정반대라고 생각해야 지혜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내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이 항상 진실이고 진리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으로 자주 쓰는 관용어가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틀림없는 사실로 주장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현상이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진실을 오히려 가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과학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 눈에는 분명히 태양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날이 바뀌고 하루하루가 쌓여 일 년 이 년 흐르는 모든 현상은 예전에는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이 움직여서 돌아가는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요. 오히려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우리의 일상적인 체험과는 정 반대가 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무시해야 더 큰 진리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해가 뜨고 지는 현상이 우리 눈에 보이는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것들을 무시해야만 거꾸로 태양이 가만히 있고 지구가 돈다는 과학적인 사실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진실을 내가 믿고 동의하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분명하고 우리가 그러한 사실들을 거부하고 외면할 때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무능하게 됩니다.

 

신앙과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신에 대한 지적인 동의뿐만이 아닙니다.

신앙과 믿음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하나의 방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머무르신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이 구원과 생명으로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하고, 삶의 태도이기도 하고, 해석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분명 우리 눈에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귀에 하느님은 침묵하시고 우리의 삶의 자리에는 하느님이 머무르시는 흔적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어느 순간에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마치 눈에 빤히 보이는 움직이는 해를 보고도 사실은 태양이 아니라 내가 딛고 있는 이 땅덩어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인정할지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눈에 안보이시기에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하느님이 없는 세상을 살아갈지. 아니면 보이는 것 너머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갈지에 대한 결정입니다. 이 결정은 인생에 한 번으로 끝나는 결정은 아닙니다. 매일 매 순간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그 너머에 다른 것을 염두에 두면 살아갈지 매 순간 내 삶과 죽음을 걸고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부활 성야를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모든 형태의 죽음을 극복하시고 온전히 새로운 생명을 지니시고 계심을 기념하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하며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죽음과 생명이라는 단어는 의학의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고백하는 죽음과 생명이라는 말마디는 의학의 용어가 아니라 희망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사용하는 죽음과 생명이라는 단어들은 의학적인 뜻보다 훨씬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의학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죽음, 생명이라는 말마디는 그저 육체, 몸에 한정됩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몸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죽음도 있지만 마음과 영혼의 죽음도 있고, 한 개인의 죽음도 있지만 그 개인이 소속된 공동체와 그가 머물러 살아가는 땅과 환경이 맞이하는 죽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숨을 쉬고 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죽어버린 인간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 인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의 모범과 삶은 생생하게 우리들 가운데 살아 있는 영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이 딛고 서있는 땅과 물과 공기는 병들어 신음할 수도 있고 환경 모두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 그 사회가 활력을 잃어버리거나 죽음의 문화를 계속 증폭시켜 나가거나 생명의 외침과 호소를 외면하는 자기 파멸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통틀어서 죽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죽음의 형태가 있다면 당연히 부활도 한 개인의 부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가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는데 나 혼자만 부활한다면 그 부활이 과연 축복이겠습니까? 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활을 했는데 내가 딛고 선 그 땅에 죽음과 폭력의 기운이 가득하다면 그 부활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희망하는 부활이라는 것은 나 혼자만의 부활이 아니라 모든 인간 모든 생명의 부활이어야 합니다. 한 개인의 부활이 아니라 그를 포함한 온 세상의 부활이어야 하고, 몸의 부활이 아니라 온 삶의 부활이어야 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부활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어야 합니다.

 

오늘 거행되는 말씀의 전례는 세상 창조 때부터 시작하여 하느님과 아브라함이 맺으신 계약 그리고 그 이후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구원인 탈출기의 사건들 그리고 그 계약에 충실하고자 하시는 예루살렘의 여러 예언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에 이르는 길고 긴 역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의 구원 경륜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소식으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각자 응답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결국 모든 이야기의 끝은 우리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끝임 없이 이어져야 하는 길이고 구원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특별한 부활 성야의 독서는 세상 창조 때부터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까지 이어져오는 하느님의 섭리와 길고 긴 역사와 특별한 은총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리고 독서와 복음에 봉독 된 그 모든 내용들은 다시 오지 않을 먼 옛날 한번 일어나고만 이야기가 아닙니다.

창조의 이야기를 보더라도 지금 현재 우리 안에서 거듭되고 일어나고 있는 축복과 은총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창조의 사건들이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꽃이 피고 새싹이 돋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와 계약을 맺으시고 우리를 당신의 아들과 딸로 불러 모으신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땅에서 광야로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처럼 우리를 당신께로 불러 자유롭게 하시고 당신을 알도록 초대하십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깨우치게 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지혜로운 이들을 통해 모범과 충고를 보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지금 그 부활의 삶을 살도록 모범을 보여 주시고 초대하십니다. 부활의 생명은 내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노력과 역량으로 내 생명을 선택하고 내 삶을 창조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의 부활 또한 나의 온전한 죽음을 겪고서야 비로써 누리게 되는 은총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부활을 의지적으로 살아 있는 동안 연습해 볼 수는 있는 듯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앎의 노력을 통해서 그리고 매일의 작은 죽음을 통해서 온전히 그분에게 의탁하는 헌신과 성실을 통해서 부활을 연습하고 하느님을 알아가고 그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의 기도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루씩 지나가고 한해씩 사라지건만 저희는 기적들 사이를 장님처럼 걸어갑니다.

저희의 눈을 볼 것들로 채워주시고 저희의 마음을 알 것 들로 채우소서.

당신의 현존이 마치 번개불 처럼 저희가 걸어가는 어둠을 비추는 순간들이 있게 하소서

저희가 어디를 바라보든 떨기에 불이 붙었지만 불에 타서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도우소서. 그리고 당신께서 빗으신 흙덩이인 저희들이 거룩하게 닫게 하시고 놀라운 가운데 이 얼마나 경외로움 가득한 곳인가 하고 외치게 하소서.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독서대쪽.jpg

  • 1
    • 글자 크기
4월4일 주님 부활 대축일 - 이영수 세례자 요한 신부님 (by 홈지기) 4월2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 김영수 스테파노 신부님 (by 홈지기)

댓글 달기

이전 1 2 3 4 5 6 7 8 9 10... 39다음
첨부 (1)
독서대쪽.jpg
63.5KB / Download 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