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 김영수 스테파노 신부님

홈지기2021.04.06 12:05조회 수 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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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요일 강론 말씀 (2021. 4. 2)

 

 

올해 성삼일을 가장 선한 지향으로 선한 삶을 진지하게 사시는 교회의 핵심 구성원들이신 수녀님들과 전례를 한다는 것에서 안정감을 주고, 고요함 마음을 나눠 준다는 의미에서 각별한 느낌을 줍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전례와는 다르게 우리가 오늘 수난기에서 봉독된 예수님의 모습은 슬프고, 처참하고 외로운 분위기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복음은 다른 복음과는 다르게 한 사람이 복음을 읽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복음 선포와는 다르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 봉독과 선포에 참여하는 형식을 띄게 된다. 일 년에 두 번 성지주일과 성금요일에 수난기의 형태로 복음이 봉독 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어떤 사람은 해설자, 어떤 사람은 군중이나 다른 등장인물들의 파트를 맡게 됩니다. 수난기의 봉독 형식은 단순히 복음을 듣는 청중의 입장에서 벗어나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들을 내 입으로 직접 말하거나 적극적으로 외치는 역할이 우리에게 맡겨집니다.

이러한 형식은 자연스럽게 오늘 우리가 수난기의 등장인물 가운데서 과연 나의 지금의 삶과 그 등장인물 가운데서 누가 가장 닮아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불과 며칠 전에 빨마 가지를 들며 호산나를 외쳤다가 이제 정반대로 십자가에 못 박고 없애 버리라고 외치는 군중가운데 내가 없는지, 내 입장에 따라서 좋았다 나빴다가를 생각하고 실제로 말하는 가운데 나는 없는지, 또 내 눈에 거슬리는 그 사람이 없어지기를 바라면서 실제로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율법학자들과 레위인 가운데 내 모습은 없는지, 또 베드로처럼 어느때는 두려움에 떨었다가 그리고 어느 때는 폭력을 휘둘렀다가 그야말로 자기가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허둥지둥 거리면서 살아가는 그 모습 가운데 나는 없는지, 아니면 적들 가운데 둘러 쌓여 부당하게 매 맞고 죽임을 당하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나의 처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들 가운데 내가 누구와 가장 닮았는지를 묵상해 볼 수 있를 것입니다.

 

수난기에서 특별한 점을 뽑으라고 한다면 저는 이 수난기 어디에서도 하느님이나 기적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수난기를 읽으라고 던져주면 그 사람은 하느님이나 신앙과는 관계없는 어떤 사람이 부당하게 괴롭힘 당하고 음모 가운데서 죽임 당하는 이야기 정도로 여길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느님도 없고 기적도 없고 놀라운 일은 하나도 안 생겨납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 생애에서 가장 기적이 필요한 때, 또한 예수님 생애에서 가장 하느님의 음성이 필요한 그때에 하느님은 침묵하고 계시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손에 철저히 밟혀가고 철저히 무기력하십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잘 들여 다 봐야 합니다. 우리가 구세주로 모시는 예수님이 모습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보라 이 사람이다그리스 신화나 다른 문화권 그리고 현재의 우리의 문화권은 믿고 기도하고 의탁하고 싶어 하는 신의 이미지는 비참하게, 외롭게, 가난하게 죽어가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정 반대입니다. 언제나 부유하고 강한 힘으로 적들을 쓸어버리고 필요할 때마다 기적을 일으키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만들어내고 채우고 허물어트리는 능력을 가진 어떤 존재를 바라고 우리를 그 존재에 의탁하고 싶어 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믿고 의탁하는 우리는 부유함의 신이다. 우리도 이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모습과는 정 반대로 우리가 구세주로 믿고 의탁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애달프고 , 무능하고, 외롭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십자가의 비움이 우리가 의탁하고 어쩌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닮아가야 할 구세주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우리는 믿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구세주로 의탁하는 이 가난하고 외롭고 무기력한 예수님에게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부유함이 아닌 가난함이고, 내가 커지거나 높아지는 것이 아닌 나의 낮아짐과 작아짐입니다. 그리고 나를 채워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워주시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일상은 특별히 여러분 앞에서 이 사제의 삶은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은 것 같아 죄스럽고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일상 안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예수님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저는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항상 내려놓거나 남에게 떠넘기고 싶고 고통의 채찍질과 손가락질, 비난은 피하고 싶고, 하느님이 침묵과 하느님의 없으심보다는 매일 매일 하느님의 영광과 기적과 권능을 체험하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의 모습과 제가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십자가의 예수님은 제 신앙의 매일의 도전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침묵 하느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지 않는 그 외로움 그리고 하느님의 기적이 보이지 않는 메마름의 시기를 매일매일 견디어가는 도전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역설의 신앙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죽으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들어내시고 선포하신 하느님은 역설의 하느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지혜롭다고 여기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어리석다고 여기십니다.

사람들이 걸림돌이라고 여기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지혜라고 선포하십니다.

사람들이 약함으로 생각하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강함으로 여기십니다.

사람들이 위대하고 높다고 보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작다고 여기십니다.

 

부활은 완전한 죽음을 통해서야 이루어지는 은총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죽음의 길, 고통의 길을 통해서만 생명과 구원을 누리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 삶의 십자가를 살펴봅니다.

십자가는 위로가 없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고통과 죽음만이 가즉한 곳입니다.

십자가는 하느님이 없는 곳입니다. 도저히 하느님이 계실 수 없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내 친구가 없는 곳입니다. 나 홀로 매달려 있을 가장 외로운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느님께 이룰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길을 보여주신 예수님께 의탁하면서 그분이 보여주신 그 길을 나도 따라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그 은총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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