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강론 - 김영수 스테파노 신부

홈지기2021.04.05 09:44조회 수 1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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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찬 성목요일 강론 말씀 (2021. 4. 1)

 

 

우리의 삶을 인간답게 하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질환들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지만 그중에서 특별히 치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치매는 기억과 관련된 질환입니다.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병이기도 하고 또한 기억하는 능력을 잃게 만드는 병이기도 합니다. 기억을 잃게 되면 내가 더 이상 나로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즉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꼭 필요한 재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인식과 입장이 달라서 같은 사건을 체험하고도 사건에 대한 기억은 제 각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기억은 단순히 먼 옛날의 본래의 일들을 떠 올리는 것에 멈추지 않습니다.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금 현재의 인식과 관점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최근 지금의 기억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도 깊게 개입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기억은 화석이나 유물처럼 시간이 지나더라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지는 않습니다. 살아있는 존재의 기억이 모두 그러하듯이 기억을 떠올리고 되새김이 될수록 그 기억은 현재와 만나면서 새로운 기억이 되어가고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간직됩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공동체의 차원에서 간직하는 기억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인가,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가 공동체나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억하는 날로 현충일이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무언가를 기억해야 하는 날로 정의됩니다. 이 날을 기억하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와 제2독서 그리고 복음을 연결하는 주제를 선택한다면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독서는 이집트를 탈출했던 노예들이 하느님이라는 분을 체험하게 되고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결정적인 사건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의 내용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자세하게 서술해 놓고 있습니다.

 

파스카(과월절) 예식은 그 뒤로 해마다 거듭 되어 예수님 시대에도 보존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유대인들의 중요한 전통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날 양고기를 먹고 쓴 나물을 먹으며 말씀을 읽으면서 조상들의 조상에 대한 기억들을 여전히 떠올리면서 간직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자신들이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를 보존합니다.

 

2독서는 예수님께서 만드신 새 계약에 대하여 어떻게 새롭게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2000년이 지난 지금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나누셨던 첫 번째이자 마지막 만찬의 방식으로 지금도 우리는 미사 중에 기억하고 보존합니다.

 

우리가 미사를 드리는 가장 단순한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기억(아남네시스anamnesis)’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미사 주례 사제가 되풀이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잘 담겨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 하여라이것이 우리가 미사를 드리는 이유입니다.

 

사실 기억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가 잊었다가 다시 기억하면 되는 것이지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무언가를 잊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 그것은 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기억 상실은 자신이 무엇을 잊고 있는지 조차를 잊고 있는 것입니다. 잊고 있는 것을 잊고도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당부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모범과 당부를 잊지 말아야 하고 머릿속에 기억하기보다는 우리의 삶 속에 보존해야 하는 것임을 잘 압니다.

기억은 머리가 좋고 나쁨에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기억은 내 관심을 머리의 좋고 나쁨의 암기력, 아이큐가 높고 낮음이 아니라 내 관심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느냐에 문제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과 내 삶이 어지럽지 않게 단순하게 정돈되도록 하는 태도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측면에서 내가 어떤 기억을 보존하면서 살고 있는지 내 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기억, 어떤 추억에서 에너지와 자부심을 누리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기억들이 나를 부끄럽게 하고 힘겹게 하는지 그리고 지금도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는지를 살펴 기억들을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없는지 등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과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을 기억합니다.

몸에 각 부분에 대한 묵상을 최근에 해 보면서 아주 진지하게 저의 맨발을 한참 동안 쳐다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언제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나의 맨발을 쳐다본 적이 있었나?

저의 일생에 딱 한번 한 시기 동안 발을 유심히 쳐다본 적이 있었다.

2008년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걸으면서입니다. 저는 평발이어서 오래 걷지 못하는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매일 걸으며 특히 비가 올 때 비를 맞고 걸으면 발가락이 양발 속에서 불어 물집이 잡히고 살이 쓸려 벗겨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이 되면 걷기 전에 발을 쳐다보면서 살이 쓸리지 않도록 발가락 사이사이에 반찬고를 붙이고 물집이 터진 부위들은 거즈로 대 주며 발을 돌보아 준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발을 살피며 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발이 온전한지를 살피지 않고 얼굴을 다듬고 옷매무새를 고치는 데 신경을 씁니다.

 

우리의 발은 내가 살아가는 이 땅,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현실, 메마르고 거칠게 느껴지는 이 땅을 딛고 서게 됩니다. 내 발은 내 인체 중에서 가장 거친 곳이고 내가 가장 눈여겨보지 않는 곳이고 나의 현실을 닮아서 가장 쉽게 더럽혀 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내발은 세상의 더러움과 거친 그 땅에 먼저 닫는 곳이다. 지금은 발전체를 감싸는 좋은 신발이 있어서 덜 하지만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샌들을 신거나 아니면 맨발이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발연 가장 쉽게 더럽혀지는 곳, 자질구레한 상처들이 자주 생겨나는 곳으로 거칠고 딱딱한 피부로 덮여진 곳이기도 합니다.

 

내 발은 내 삶 중에서 가장 거칠 곳으로 내가 눈여겨보지 않는 곳이고 내가 설 수 있도록 내 삶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열굴, 손을 씻겨 주시지 않으시고 발을 어루만져 씻겨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듯이 우리 삶의 가장 거친 곳, 가장 수고로운 곳 그리고 어쩌면 나조차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곳을 만져 주시고 온전하게 해 주십니다.

 

전례 안에서 기억(아남네시스anamnesis)’과 기념은 단순히 사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전례 안에서 기억기념은 그때 그 사건을 지금 이 시간에 현재화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전례 안에서 세족례는 2000년 전 예수님이 하셨던 그 일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에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의 발을 씻겨 주심을 체험한 일이 바로 우리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매일 필요한 때에 나의 거칠음과 나의 수고로움 항상 어루만져 주심을 체험하고 그 체험을 이웃과 동료와 나누는 시간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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