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 애인이요~이!”- 정제천 신부님

홈지기2020.05.15 14:16조회 수 11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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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2003년 3월 1일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동안 아픈 적이 없고 아파서도 안 되는 어머니가 폐암

3기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해 1월의 일이었다. 며칠 후 나보다 2년 전에 어머니를 잃은 동료

신부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비로소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회한이 밀려왔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나에게 2% 부족이었다. ‘글씨를 좀 더 예쁘게 쓰시면 좋을 걸, 얼굴이 좀 더 세련되시지, 친구

엄마처럼 양장을 즐겨 입으셨으면…’ 어머니에게 없는 것을 나열하면서 내 마음을 드리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공부할 때에 어머니가 장문의 편지를 보내셨다. 6쪽인가 7쪽짜리 긴 편지를 금방 읽었고,

얼마 뒤에 그 편지를 아무렇지 않게 버렸다. 전화를 하시지, 뭘 이런 걸 힘들게 편지로 쓰시나 하면서.

어머니가 그 편지를 쓰시는 데에 적어도 4~5일이 걸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어머니가 말기

폐암 환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이 사랑인 줄 알게 되었다. 2%가 부족하다면 100점 만점에 98점인데,

98점짜리 어머니를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살았다니, 나는 얼마나 모진 놈인지!

청개구리 설화가 바로 내 이야기라는 깨달음과 함께 하염없이 통회의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에 대한 그림이 180도 바뀌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전에는 나에게 부족한 것, 없는 것들에

대해 부모님을 탓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그냥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게 있는 좋은 것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 받지 않은 것이 없다. 남을 먼저

염려하는 배려심, 경청하는 태도, 이해심, 사회성 등등. 그리고 남들이 갖지 못한 것도 갖고 있다.

나는 언변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아니다. 리더십이 탁월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의 좋은 점을 인정할 줄 알고 격려할 줄 안다. 더불어 사는 지혜도 있다. 나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 좋은 것들이 참 많다. 어느 시인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고 했는데 나도

그렇다. 더 예쁘고 더 아름다운 것들을 밖에서 찾느라 내 안에 감춰진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었다. 어머니는 내 속에서 이미 내가 되어 있었다. 감사, 감사 또 감사!

 

돌아가시기 전에 이것을 깨달은 것은 큰 은총이었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었을까?

어머니는 중풍까지 겹쳐서 한 달 동안 서울의 누나 집에 계시다가 순천 가롤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셨다. 마침 겨울방학이어서 온종일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들이 온종일

대화하기에는 공통분모가 많지 않아 나중에는 좋아하시는 성가를 불러드렸다. 어머니와 아들의 세대차가

신앙으로 메워지고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3남 3녀 형제들을 하나씩 따로 불러 당신의 마음속 유언을 하셨다. 말기의 폐암

환자는 목청이 떨리어 나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귓속말로 “미안해. 고마워.” 하셨다.

‘무슨 말씀을요. 제가 죄송하지요.’라고 해야 했지만 나는 불쑥 “엄마는 내 애인이요~이!”라고 대답했다.

떠나실 때에는 “이제 가야겠다. 놔줘!” 하시고, 손을 흔들면서 입술말로 “바이, 바이!” 하셨다.

소풍을 나왔다가 집에 가는 아이처럼 미련 없이 떠나셨다. 6남매 맏이인 누나가 평점을 매겼다.

“행복한 인생!” 고생을 실컷 하셨지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아 기력이 다할 때까지

사랑만 하고 가셨으니 “행복!”이라는 것이다. 말년에 효자인 큰형님 내외와 손자들과 함께 사시면서

세상 시름도 많이 잊으셨으리라.

살아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더 큰 선물을 주고 가셨다. 죽음의 세계로 건너가시는

어머니는 그지없이 평온하였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 낯설거나 무섭지 않게 되었다. 죽은 다음에는

아무래도 긴 암흑의 터널을 거치겠지만, 그 끝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를 맞아주실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닌 변화라는 신학의 명제를 더 생생하게 믿을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말씀이 또 있다. “내가 좀 고생하면 되지, 왜 옆 사람을 힘들게 해?” 어머니의 인생

원리이다. 어머니는 평생 남을 위해 사셨고,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사셨다. 내가 천주교 영세를 받고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이런 삶의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 두 분 부모님을 통해서

내 마음밭이 준비되어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자 잘 자랄 수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에게 당신 생명을

나누어주시고 신앙의 세계로 인도해주신 부모님께, 무엇보다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엄마는 내 애인이요~이!”

 

(생활성서사 2020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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