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5일 - 주님수난성지주일

작성자 홈지기 작성일자 Apr 06,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제가 성당에 다닌 이후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6·25전쟁 때도 미사를

했다는데... 사건 안에 감춰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나중에 들여다보면 알겠지요. 하느님은 시간의

시작과 끝을 한꺼번에 보시고, 우리는 시간의 과정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현재 일어나는 사건의 참된

의미를 잘 모를 수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조화를 이루어서 선의로 마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므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힘들고 어려운 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성지주일이면서도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의

모습보다는 성주간 안에 일어날 사건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파스카 성삼일에 벌어질 일들을

성지주일에 모두 담아서 들려주셨습니다. 긴 말씀입니다. ··다 다른 전례력에 따라서 강조하는 점이

조금씩 다른데 어떤 복음서는 목요일의 사건이, 어떤 복음서는 금요일 수난의 사건이 더 자세하게 묘사

되는 것을 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긴 복음서의 말씀들을 하나로 역어낼 키워드(Key word)를 찾으면

좋겠습니다, 뜻이 통할 수 있도록 한 단어를 찾는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뜻 이라는 단어를 찾았습니다.

 

그 뜻은 내 뜻이냐 하느님의 뜻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느님의 뜻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게

되고, 일이 벌어지는 사건 안의 배경이 되며, 이 모든 사건이 향하는 종착점, 목적지가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우리 인간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 하느님의 절대적인

구원의지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이 지금 이 사건이 벌어지는 모든 것의 감춰진 키워드(Key word)

라고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한 주간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베드로도 뜻이 좋았습니다. “스승님이 죽으시면 저도 같이 죽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같이 죽겠다는 뜻을 꺾고,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배반은 아닙니다. 처음 갖고 있던 베드로의 뜻은 함께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뜻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엉뚱한 대답을 쏟아놓게 만듭니다.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겟세마니에서

힘들게 기도하시며 보여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예수님은 피땀을 흘리시면서도 당신에게

닥쳐올 사건들을 아버지의 뜻안에서 받아들이려고 하셨고, 베드로는 자신의 뜻을 내세워 뭔가를

해보고자 했으나 사람들의 질문에 자신의 뜻을 접어두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마저 하느님의 큰 섭리 안에서 보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주간 동안 우리에게 화두들이

있겠지만 특별히 '뜻'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저도 사제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들과 세워놓은 뜻이 생각한 대로, 하고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를 여러 번

봤고,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우리의 뜻이 어떤 기준 안에서 세워지고, 어떤 목표를 향해 세워져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큰 것은 언제나 같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가

받은 이 소명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 가게 해주십시오.’ 라고 말하지만 베드로처럼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퇴색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의 퇴색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나는 정말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은 어떤 사건의 경험이나 체험을 통해 굳은 뜻을 세우고 실천해나가는

원동력이 되지만 시간 안에서 그 뜻을 세웠던 색이 옅어지고 퇴색되면 그것을 실천하고 실행하는 에너지가

부족해집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상황들에 대한 상정 즉 그 상황을 어떻게 조화롭게 끌어나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일이 닥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 지도록 스스로를 항상 양성하고

훈련해나가야만 가능합니다. 불가에서 얘기하는 돈오냐 돈수냐즉 한꺼번에 깨달아 뜻을 이루느냐 혹은

꾸준히 훈련하고 양성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가느냐의 관점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종교이고, 하느님의 은총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은총이 내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의 그 씨앗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그 씨앗을 잘

가꾸지 않으면 말라죽게 됩니다. 예수님이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세운 뜻을

본다면 잘 가꿔야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도 맺게 됩니다. 그러자면 우리는 노력과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하루하루 자신을 양성하고 훈련하는 기간이 필요하지 않는가 싶습니다.

내 뜻은 비우고,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채워지도록 하는 훈련과 양성의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살지 알 수 없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뜻은 세우지만 초지일관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항상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겠지만 이번 성주간만큼은 내가 세운 뜻이

무엇이고, 내 뜻이 시간의 여정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커나가고, 변화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내 뜻은 줄어들고, 하느님의 뜻이 채워지는 은총의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종희 신부님 강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