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성사

홈지기2013.06.04 14:01조회 수 3015댓글 0

    • 글자 크기

성체성혈 대축일
본원 미사 강론. 이영수 신부님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나자렛 예수에게 모든 것을 걸고 추종했던 제자들에게 결국 최후의 만찬이 되고 말았던 그날 밤, 과월절 식탁에서의 의미심장한 말씀이 새벽하늘처럼 다가왔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내 피다."하시더니 이튿날 정말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 후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함께 모여 예수님과의 마지막 식사를 회상하며 한 조각의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입에 넘기는 순간, 예수님의 삶과 죽음, 사랑과 고난, 눈물과 연민, 한의 덩어리가 넘어왔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 까칠까칠하고 초라한 빵 한 덩이를 자신의 혼백을 담아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내어 놓는다고 했을 때, 그것은 상징이고 비유의 말씀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신다는 것은 부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생전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시던 예수님의 모든 삶을 받아 모시는 것이고,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한 그릇이 밥을 통하여 노동과 땀과 눈물이 나에게 들어오시듯이 성체 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전 생애가 저에게 옵니다. 

 예수, 그분이 사랑했던 사람들, 그분이 쓰다듬었던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들, 그분이 연민의 정으로 껴안았던 고난의 역사, 그 모두를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예수님의 전 생애와 죽음을 기억하며 그 분의 모든 삶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체성사 안에는 베들레헴 마구간의 여물통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탄생하신 강생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척박한 고난의 땅 갈릴레아에서 목수일을 하던 노동자 예수님의 모습과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 버림받고 소외된 죄인들과 어울리시며 오해받고 배척당하실망정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며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시는 착한 목자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십니다. 높은 사람이 되어 대접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며 몸소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예수님이 겸손한 모습으로 현존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약속과 '너희가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고 하신 주님께서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모여 함께 나누는 이 성체 안에 현존하십니다. 

 그리고 성체 안에는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놀라운 하느님의 계획이 담겨져 있습니다. 즉 멀어졌던 하느님과 인간을 다시 결합시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일치시키려는 구원계획이 들어있고, 갈라진 사람과 사람을 놀랍게 한 몸으로 일치시키려는 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이토록 놀라운 하느님의 계획과 심오한 신비가 담겨있는 성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화두입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안에 교회의 영적 전 재산이 내포되어 있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교회는 성체성사로 생활합니다. 성체성사라는 이 만찬의 자리 때문에 교회는 존속하는 것입니다. 

 사제도 성체성사 때문에 있고 신자들도 성체성사를 위하여 모이는 백성입니다. 
 성체성사는 한마디로 먹을 것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도 명확합니다. 교회는 바로 먹을 것이 되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고, 신앙은 바로 내 자신이 먹을 것이 되어주는 존재로서 거듭남을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먹을 것이 되어주는 일이 성체성사이고, 남에게 먹을 것이 되어주는 그곳에 하느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는 빵과 물고기로 굶주린 군중을 먹이셨으며, 마침내는 그 자신 십자가 위 희생재물이 되셨습니다. 그의 목숨 건 희생과 나눔을 기억하는 모든 성찬전례는 결국 그의 먹을 것 되어주심을 기억하며 빵을 축복하고 자르고 나누는 행위의 반복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육과 피를 먹고 나누어 마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도전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오,"하고 말입니다. 이제는 쪼개어지는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들이 당신의 일을 이어가기를 바라십니다. 

 성체성사는 그저 눈에 작은 조그만 빵쪼가리가 아닙니다. 밥이 한 그릇의 영양 덩어리만이 아니었듯이 성체는 하느님의 땀과 하느님의 눈물,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하느님 자체이십니다. 

 그리고 그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들은 어느새 하느님의 얼굴을 닮아가고 하느님의 냄새를 닮아가며 하느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성체는 우리가 하느님을 닮는 일입니다. 밥 되어주는 삶을 사는 일입니다. 늙어갈수록 모두는 하느님의 얼굴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제대로 성장해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곳에는 하느님의 얼굴이 함께 자리할 것입니다.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처럼, 성찬은 우리 모두를 변화시키는 성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게 만드는 성체를 통해 우리는 모두 거룩한 사람들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변화를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멘.

  
    • 글자 크기
가진것을 다 팔아야만 살 수 있는 그 것! (by 홈지기) 예수님의 고별담화 (by 홈지기)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 자유.. 홈지기 2013.07.11 3180
18 잃어 버리고 사는 것들 홈지기 2013.07.10 3452
17 뿌리가 나무에게 홈지기 2013.07.10 3317
16 자녀를 위한 기도 홈지기 2013.07.10 5868
15 가죽나무 홈지기 2013.07.10 3221
14 기적을 살기를.. 홈지기 2013.07.09 3050
13 십자가 말고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 홈지기 2013.07.09 3297
12 하느님 나라는 차선이 아니라 우선이다 홈지기 2013.07.03 3170
11 예수만을 위한 사람이 되기를 홈지기 2013.07.03 2783
10 예수님을 닮은 가난,온유, 자비의 삶 홈지기 2013.07.03 3242
9 그럼에도 주인은 참 오래 참습니다 홈지기 2013.07.03 2833
8 가진것을 다 팔아야만 살 수 있는 그 것! 홈지기 2013.06.11 3281
사랑의 성사 홈지기 2013.06.04 3015
6 예수님의 고별담화 홈지기 2013.05.13 3555
5 부활 홈지기 2013.04.16 3426
첨부 (0)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