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죄의 고리

홈지기2013.04.14 14:41조회 수 369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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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요일 수난 예절

본원전례 강론. 이영수 신부님

 

성금요일 전례에 관한 오랜 전통은 이 날을, 수난의 장소인 순례지인 만찬의 다락방에서 십자가의 골고타 언덕으로 순례하며 기도와 묵상, 그리고 수난에 대한 예언서와 복음을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날로 지내왔습니다.

이 전통이 오늘날가지 남아 성금요일은 로마 전례에서 미사를 봉헌하지 않는 유일한 날이자, 그 대신으로 십자가에 대한 지극한 경배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이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완성되었음을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너무도 잔인하다 하여 로마의 시민들에게는 결코 언도되는 일이 없었던 십자가형입니다. 오직 노예들과 식민지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던 잔혹함의 현장이 십자가입니다. 몸서리 쳐지는 고통에 모든 신경이 끊어지고 뼈마디 마디가 다 드러나고서야 겨우 죽음을 맞는 이 처참한 사형도구인 십자가가 이렇게 단 한 사람으로 인하여 구원의 열쇠가 되고 은총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눈물에서 기쁨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신비의 절정은 세상 사람들의 방식이 아닌 하느님의 방식으로, 첫째가 아닌 꼴찌의 길, 강함이 아닌 약함의 길, 권력이 아닌 봉사의 길, 성공이 실패의 길로, 전혀 다른 생명, 전혀 다른 삶을 이끌어낸 현장이 바로 이 십자가입니다.

죄의 결과는 고통이요, 고통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등장하여 오늘날까지 그토록 악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 굴레를 뒤집어쓴 채 살게 만든 이 죄의 악순환……. 누군가 한 사람이, 그것도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의 무죄한 이의 죽음만이 해결해 줄 수 있던 그 고리가 끊어지는 것을 우리는 오늘 저 십자가에서 발견합니다.

무죄한 이의 죽음……. 사람들의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어간 짐승들은 많았습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죄와 부정, 그리고 추함을 대신 뒤집어 쓴 채 묵묵히 죽어가야 했던 숱한 대속물들의 피가……. 이제껏 인간이 지내온 속죄요, 보속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십자가의 등장으로 인해 더 이상 애꿎은 짐승의 죽음은 소용없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무죄한 인간, 고직 사랑만이 전부인 인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어도 좋을 만큼의 그 인간이 이 악의 고리, 이 죽음의 고리, 이부정과 이 모순의 고리를 쳐 없애기 위하여, 전혀 새로운 세상과 삶을 위하여, 기어이 저 십자가를 선택했을 때, 악의 고리는 드디어 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악을 악으로 끊을 수 없습니다.악은 오로지 선으로만 해체시킬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분노와 원망, 좌절과 절망을 해체시키는 한없는 사랑, 그것입니다.

사랑, 어느 정도의 사랑입니까? 벗을 위하여 나의 목숨을 바치는 정도의 사랑입니다. 원수를 위하여 나의 목숨을 바치는 정도의 사랑입니다. 지금 나를 죽이는 저들을 위하여, 죽어가면서도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를 바쳐주는 그 정도의 사랑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도리어 나의 죽음으로 대신 갚아낸 그 사랑이 사람들을 짓밟던 엄청난 무게의 돌덩이, 폭력과 미움의 악순환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십자가는 그런 사랑입니다.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만을 골라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야 할 사랑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나의 인행은 그 방향을 달리하였습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었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제대로 만나면서부터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고, 내가 왜 사는지 알았으면, 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나는 알았습니다.

구원의 대가는 참으로 비싼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열기 위해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 참혹한 죽음의 이 길을 감당했어야 했으며, 그 구원의 길을 따라 걷기 위해 나 역시도 나의 죽음만큼의 고통과 눈물, 두려움과 아픔을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의 수난사는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영광, 끝까지 사랑하심으로써 영광을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요한 복음사가에 따르면 수난은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수난입니다. 예수님은 사제의 기도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영광스럽게 되는 그 일이 고통을 거쳐야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요한의 수난사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영광이 무엇보다도 극도의 고통과 모욕을 통해 최고조에 이른 사랑에 의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어리석음의 승리를 기원하는 오늘 이 전례 중에 저 십자가를 향하여 허리 숙여 절을 할 것입니다. 이 절은 그저 일 년에 한번 분향하고 끝내버리기 위한 절이 아닙니다. 당신의 죽음이 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듯이 나의 죽음이 내 이웃과 내 가족들에게 구원과 생명의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도 당신의 뒤를 따르겠노라는 다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가 나를 영광스럽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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