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의 신비

홈지기2013.04.14 14:04조회 수 395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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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목요일 주님만찬 미사

본원 미사 강론. 이영수 신부님

 

죽음과 생명이 교환되고, 저주와 축복이, 땅과 하늘이 교환되는 거룩한 삼일이라고 부르는 성삼일의 첫날, 주님 만찬 저녁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 밤, 우리는 성체성사의 신비 속으로 초대받을 것입니다. 인간을 향한 헌신과 하느님의 놀라운 자기 비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밤, 우리는 사제가 무엇인지, 수도자의 참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로지 사랑만이 세상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갈등을 극복하며 분리를 이겨내게 만드는 유일한 힘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우리 안에 드러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필생의 꿈이 무엇이고, 이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첫째 독서의 출애굽기 말씀은 오늘 예수님이 나누셨던 파스카의 만찬의 유래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재앙에서 벗어났고 해방이 길에 올랐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매년 파스카의 축제를 지내면서 우리를 해방시킨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백성이며 계약에 백성이라는 자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서도 가장 사랑하던 제자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들어내 보여주시고자 하십니다.

결국 예수는 당신의 때가 온 것을 아셨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 이 세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길 때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배반당할 것과, 체포될 것과 매질당한 것, 고문당할 것, 한 낮에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해방절 식사가 끝날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밤중에 유다는 벌써 어두움을 틈타 떠나고 없었습니다. 그분은 무엇인가 중대한 일을, 임종을 앞 둔 많은 어버이들이 하듯이, 참으로 중요한 유언을 하려는 듯 했습니다. 드디어 그분은 대야와 물을 담은 주전자와 수건을 들고 바닥에 쭈그려 앉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씻어주었습니다. 그분은 고개 한번 들지 않고 우리의 모든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그분은 이 일을 멈출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어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행동은 갑작스럽게 취하신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당신 생애를 통하여 줄곧 드러낸 행동이었고 가르침이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이 섬기려 함은 그분의 삶의 모습이요 종의 신분을 취하신 예수의 행위가 발을 씻는 모습에서 온전히 드러납니다. 인간의 필요에 전적으로 당신을 내어주고 인간의 손에 맡기시는 자세를 드러내십니다.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는 길, 참되게 자기가 되는 길은 바로 타인에게 자기를 내어주는 삶, 바치고 나누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본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은 바로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전 생애를 바쳤듯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살기 위해선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는 이기기 위해서는 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으뜸이 되기 위해서는 꼴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마지막으로 그는 사랑하기 위해선 더 이상 말이 아니라 실제로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오늘 우리가 행하고자 하는 발을 씻겨주시는 예식입니다. 그분에게 산다는 일은 바로 죽는 일, 곧 남을 위하여 자기는 사라지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알량한 자존심도 명예도 상처나 복수 혹은 하찮은 권위마저도 모두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라져야만 합니다. 온전히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고 그래야만 진정으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는 일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날마다 일어나거나 계속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날마다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임을, 그리스도인의 삶은 섬기는 삶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분의 수난은 섬김의 전정입니다.

오늘 주님의 만찬에 초대받은 우리는 이 사건의 주역들입니다. 주님은 오늘 이 밤 당신과의 친교를 제안하시고, 당신의 수난과 희생에 참여하도록 제안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이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만찬을 새삼 보도하기보다는 성찬이 먹고 마시는 허례허식이 되지 않도록 성찬의 더 깊은 의미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여, 제자들의 발을 씻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 밤 행하신 발 씻김과 성찬의 의식은 예수님의 공생활을 요약하고 그분의 사명과 꿈을 영원히 제자들을 통해서 이어가기 위한 필생의 사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말씀은 초대교회가 매일 예수님을 기억하는 성체성사를 왜, 그리고 어떻게 기념하였던가를 보고해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오늘 만찬은 그분과 더불어 우리도 자신을 바치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를 당신의 부활의 생명을 받아 살게 하려는 만찬이며, 주님의 수난, 죽음, 부활을 우리의 것으로 삼게 하시려는 만찬이며, 우리가 모두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의 신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발을 씻겨주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부끄러운 상처와 심각한 고통을 보듬어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서로 냉대하거나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 정해놓고 자존심의 높낮이를 따지고 있다면 그것은 형제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성체께 대한 모독입니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은 죽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이 마음으로 다시금 성체 앞에 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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