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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과 달콤한 멍에 <광주 대교구 김민수 신부님의 연중 21주간 주일 미사 강론>

바람의노래2021.08.30 20:31조회 수 1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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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드멜로 신부가 전한 <어느 선사와 고양이 이야기>를 아시지요? 처음에는 삶의 필요에 따라 취해진 자연스러운 조치가 시간이 흘러 그 삶의 자리가 묘연해지면, 원래의 취지와는 사뭇 다르게 왜곡 변질되기 쉽습니다. 아마 손 씻는 예식도 처음에는 위생적인 문제로 시작됐다가 나중에 제의적 정결례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예수님과 적대자들의 논쟁거리가 되고, 결국 유다교와 초기 그리스도교 간의 율법논쟁으로까지 번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587년에 바빌론으로 끌려가 50여 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희망에 부풀어 귀환합니다. 그러나 막상 돌아와 보니, 국가의 구심점이던, 왕도, 성전도, 전례전통도 다 사라지고, 전에 살던 집이나 전답도 다 남의 손에 넘어가고, 잡혼, 우상숭배, 종교혼합주의가 만연한 비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즈라와 느헤미아 같은 당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느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으며, 부서져버린 백성들의 마음을 결집시켜 새 출발을 하게 할 방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하느님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국가로 정의하고, 하느님의 뜻이 담긴 율법을 헌법 삼아 새로운 율법중심 공동체를 탄생시키는데 그것이 바로 유다교입니다.

처음, 그들에게 율법은 유배지에서 수집 정리해 가져온 토라를 의미했으며, 세심한 율법준수가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담보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사회가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지자, 율법힉자들이 토라를 현실상황에 적용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시행세칙들과 전해오는 관습법들을 조상들의 전통이라 부르며, 이것도 하느님의 계명처럼 철저히 지키도록 요구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매우 비판적입니다. 첫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버린다는 것, 둘째, 인간의 모든 삶을 법으로 규제하려들면, 법은 본래의 구원적 의미를 상실하고 무거운 짐으로 변질된다는 것, 셋째, 마음이야 어떻든 겉으로 법을 꼼꼼히 지키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으로 존경받는 사회가 되면, 하느님의 눈보다 사람의 눈을 더 의식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해 법을 지키는 위선과 입술로는 하느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형식적 율법주의를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인들은, 거룩하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려면 늘 정결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제의적으로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으로 구분해놓고, 불결한 것은 접촉을 통해 감염되며, 합당한 정결례를 통해 다시 깨끗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밥을 먹을 때 손을 씻느냐 마느냐는 위생상의 문제일 뿐, 사람 됨됨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 됨됨이를 결정짓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므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깨끗한 손이나 깨끗한 음식보다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는 겉보다 속이, 형식보다 내용이, 수단보다 목적이 더 중요합니다.

실상, 법이 필요 없는 공동체는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법은 지키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무거운 짐이 될 수도, 달콤한 멍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상들의 전통이야말로 그것을 만든 사람들조차 지키지 않는 무거운 짐으로 규정하시면서, 그 짐에 눌려 신음하는 자들은 다 당신께 오라고 초대하시며, 당신이 주시는 사랑의 법가볍고 달콤한 멍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영신과 모든 힘을 다해지켜야 하는 예수님의 사랑의 법이, 제대로 지키려면, 외적 행동을 규제하는 유다교의 율법보다 훨씬 더 어렵고 큰 희생을 감수해야할지 모르나,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지키면 희생까지도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볍고 달콤한 멍에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럼,  수녀님들에게 수도회 규칙은 무겁고 불편한 짐입니까? 아니면, 가볍고 달콤한 멍에입니까?

 

< 코로나로 인해 본당에 미사가 없어서 김민수 신부님께서 오셔서 미사를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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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평화를 위하여 (by 홈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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